기자명 박재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mail protected]) 승인 2026.02.26 18:00
사법 기능 위축시킬 ‘법왜곡죄’와 ‘대법관 증원’ 서두를 일 아냐
재판소원으로 사법 절차 지연 명확…국민에게 부담 전가될 것

2월26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형법 개정안 수정안(법왜곡죄)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사법 3법’을 개정하려는 여당의 입법 시도가 끝내 강행됐다.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생긴 이래 80년 가까이 이어져온 사법 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헌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공론화를 통해 전문가 의견과 국민 의견을 듣고 충분한 토론을 거칠 것을 요청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법안 통과 이후 대통령 거부권과 헌재 위헌심판을 요구하기에는, 바로 두 기관의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법조 실무에 종사했고 대학에서 공법학을 가르쳐온 학자로서 마음이 무겁다.
국회가 외면한 재판소원의 실질적 파장
우선, 2월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왜곡죄 신설법(형법 개정안)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정상적인 사법 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가 크다. 적용 범위를 형사사건으로 한정하고, 적용 요건을 엄격하게 한 수정안이 도출됐으나 법 자체의 문제는 그대로라고 본다. 만일 법안이 공포돼 그대로 시행된다면, 정상적인 재판이나 수사 과정도 고소·고발의 대상이 돼 판검사와 수사기관이 매번 곤란을 겪을 우려가 있다.
대법관 증원(법원조직법 개정안) 역시 서두를 일이 아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것은 만성적인 사건 처리의 정체를 해결하는 취지도 있겠으나, 그렇게 많은 대법관을 매년 증원하게 되면 법령 해석의 통일과 정책 법원을 지향하는 대법원의 위상에 걸맞을 것인지 의문이다.
위 두 법안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는 반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헌법재판소법(헌재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국민의 입장에서 그 의미와 파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재판소원의 도입 여부는 헌법재판소(헌재) 설립 초기부터 헌법소원의 대상을 확장하는 문제로 대법원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다루어졌던 30년 넘는 논쟁거리다. 그동안 대법원은 표면적으로 다툼을 공론화하기보다 일부 사안에서만 방어적으로 다뤘지만, 헌재는 자신의 권한과 직결돼 있으므로 공세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면서 헌법학계로부터 다양한 이론적 뒷받침을 받아왔다. 이론적으로는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헌법에 규정된 대법원의 최고법원 지위에 반한다는 입장과 재판도 공권력 작용이므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인 입장만으로는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금지하는 헌재법(68조1항)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이른바 한정위헌이라는 주문 형태를 매개로 자신의 결정에 반하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시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려왔다
최초의 재판취소 사건(1997. 12. 24. 선고 96헌마172, 173 결정)은 1993년경 부과된 양도소득세액에 대해 구 소득세법에서 예외적으로 실지거래가액으로 과세하도록 대통령령으로 위임한 규정을 그 실지거래가액에 의한 세액이 기준시가에 의한 세액을 초과하는 경우까지를 포함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두 번째 사건(2022. 6. 30. 선고 2014헌마760, 2014헌마763)에서 헌재는 제주특별법상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심의위원 중 민간인인 위촉위원을 공무원으로 의제해 뇌물죄를 선고한 판결에 대해, 공무원 의제 규정이 없는 경우 공무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유추해석으로 보고, 이러한 결정에 반하는 법원의 재심기각결정을 취소했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GS칼텍스 법인세 취소 사건’(2022. 7. 21. 선고 2013헌마496 결정)에서는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에서 자산재평가법에 의한 재평가 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 내에 주식을 상장하지 아니하는 경우를 규율하는 규정이, 법률을 전부 개정하는 과정에서 경과 규정을 두지 않고 삭제된 것이 문제가 됐다.
여기서 대법원은 주로 문제가 되는 대상 조항의 취지와 사실관계의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해 판단한 반면, 헌재는 조세법률주의나 죄형법정주의와 같은 형식적인 헌법 원리를 엄격히 적용해 한정해석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다만, 법령의 위헌성을 다루는 통상의 헌법 재판과는 달리, 이러한 사안들은 구체적인 사건의 경과와 사실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헌재 결정에 따라 구체적인 당사자 승패가 좌우됐다. 18년에 걸쳐 진행된 GS칼텍스 사건처럼, 이러한 과정에서 대법원과 헌재를 여러 번 오가면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됐다. 과연 이러한 소모적인 공방을 감당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건 통계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는 최근 수년간 매년 약 2500건에서 3000건의 사건을 접수·처리하고 있다. 최근 보도된 독일·스페인·대만 등의 재판소원 사례를 참고하면, 우리의 경우 헌재 사건 수에 10배가 넘는 대법원 사건이 고스란히 재판소원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과거에 비해 법원의 사건 처리가 상당히 지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사법 절차 전반의 정체는 불을 보듯 명확해 보인다. 그 비용과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다.
헌재가 주장하는 것처럼, 재판소원이 허용되는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위 사례들도 단순한 법령 해석의 견해차로 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것인지를 정치적 고려 없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문제는 결국 법리적인 논거보다는 재판관의 정치적 소신이나 감에 의해 결론 내려질 공산이 크다. 그에 비해 대법원과 헌재를 오가면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국민은 자신의 사건이 대법원은 물론 헌재에서마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다는 열패감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단심제 헌재는 누가 감시하나?
만일 전면적인 재판소원이 허용된다면, 단심으로 종결되는 헌재의 단점이 오롯이 부각될 것이다. 추상적인 법령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 재판과 달리, 구체적인 분쟁을 심리해 일방 당사자의 승패를 가르는 사건에서 오판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헌법 재판은 지금까지 재심을 허용한 적이 없으므로, 헌재 결정으로 인한 당사자의 구체적인 피해는 어떻게 구제할 것이냐는 문제가 새로 제기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대법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 임명되는 헌법재판관의 객관성을 고려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헌재가 일단 위헌으로 결정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그 제도에 대한 재논의가 불가능해지는 점도 문제다. 일례로 간통죄는 여러 차례 합헌 결정에도 다시 재논의돼 폐지됐으나, 헌재에서 폐지된 군가산점 제도는 재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헌재는 심판의 근거법률인 헌재법은 물론 재판관에 대한 임명행위까지도 스스로 판단하도록 권한을 확대했다. 이렇게 비대해진 권한은 향후 입법자의 권한마저 잠탈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인 헌재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국민은 왜 지금 이 시기에 ‘사법 3법 개정’과 같은 심대한 변화를 겪어야 하는지 의문이 크다. 아직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마지막 숙고의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출처 : 시사저널(https://www.sisajournal.com)
